그냥...

메리 포핀스 리턴즈

이비네 2019. 3. 23. 18:05

1.

    20대의 끄트머리 어느 즈음에 두어달 가량 히키코모리로 지낸 적이 있다. 그냥 방에 처박혀서 하루 종일 음악만 듣는 나날이었다. 그것도 단 두장의 음반만 줄창 듣는.

    지금은 바이닐이라고 부르는 LP레코드판 두 장. 하나는 록밴드 도어스(The Doors)의 명반으로 꼽히는 모음곡집인 <13>이었고, 다른 하나는 <메리 포핀스>였다. <메리 포핀스>는 일반적인 OST가 아니라, 노래 사이사이에 이야기의 전개를 들려주는 나레이션까지 들어 있어서 그냥 듣고 있으면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르곤 했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살았던 걸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이런 질문이 자연스레 떠올라서, 20대의 한 모퉁이 골방 속 같은 그 시절을 반추해 본 적이 있다. 아마도 그 시절 나는 몹시 불안했던 것 아닐까. 그 아름답다는 청춘이 이제 막 끝나가고 있는데,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은 없고, 이룬 것도 없었으니까. ‘미래의 불확실성이 가능성이 아니라 불안으로 다가오는 나이라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썼던 기억이 난다.

    도어스의 록 음악이 그 불안한 청춘의 내부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던 무엇인가와 공명해 주는 것이었다면, <메리 포핀스>는 그렇게 지치고 힘들었던 나를 위로하고 치유해주었던 것 같다. 소위 말하는 힐링 음악이었던 것이리라. 그렇게 두어달 동안 도어스와 메리 포핀스를 들으며 나는 치유되었고, 다시 세상 속으로 나왔다.

 

2.

    <메리 포핀스 리턴즈 (Mary Poppins Returns)>를 극장에서 보았다. 원작이 설정한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해냈던 줄리 앤드류스의 메리 포핀스를 다시 그대로 완벽에 가깝게 재현해낸 에밀리 블런트를 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따라야 할 텍스트가 있다는 것은 편리한 면도 있겠지만 얼마나 답답한 것일까.

    전편이 만들어놓은 것을 그대로 이어가긴 노래도 마찬가지였다. 전혀 다른 노래들인데도 전편의 노래들과 느낌이 너무나 똑같았다. 디즈니 영화의 노래들이 갖고 있는 전통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러면서도 뭔가 이거 <메리 포핀스>의 노래야!’라고 주장하는 듯했다. 그래서 몇 퍼센트인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이 영화는 전편이 주었던 치유의 효능을 주지 못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지금의 나 역시 나이 들어가며 받아들여야 하는 여러 부정적인 것들 앞에서 흔들리고 불안해하고 있는데. 위로와 치유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데.

 

3.

    왜 그럴까. 나는 다시 생각해 보았다. 거의 똑같은 캐릭터, 거의 똑같은 음악, 거의 똑같은 마법의 세계... 그럼에도 거기엔 큰 차이가 있었다.

전편엔 없는 것이 거기 있었다. 바로 악당이었다. 전편에도 아이들의 행복을 저해하는 인물들과 그로 인한 갈등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생각이 달랐을 따름이고, 오해가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런 갈등은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메리 포핀스 리턴즈>에는 아주 질 나쁜 악인이 나온다. 나쁜 놈이 갈등을 일으키고,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물론 갈등은 어쨌거나 해소되고, 결과는 해피 엔딩이지만.

    나는 그 악인의 존재가 매우 불편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영화를 그냥 행복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동화적인 마법의 세계라면 현실과 달라도 되는 거 아닌가. 악당은 없고 착한 사람들만 살아도 되는 거 아닌가. 아름다운 환상세계에서도 나쁜 놈을 마주쳐야 한단 말인가... 전편의 행복했던 기억이 부추겨놓은 기대가 컸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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