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몸 밖의 불평등, 몸 안의 불평등

이비네 2019. 2. 11. 22:28


 

    사람들은 오랜 동안 불평등과 싸워왔다. 불평등의 원인을 외부적인데서 찾고, 그것을 타파하려고 애썼다. 뒤집어 말하면, 여태까지 불평등이란 외부로부터 기인했다고도 할 수 있다.


    원시시대엔 어땠는지 남아 있는 정보가 너무 적어서 잘 모르겠지만(‘원시국가의 진화같은 책을 보면 권력구조의 형성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 같다), 신분제도가 성립된 고대 이래로 신분이란 불평등의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러다가 신분제도가 와해되기 시작하면서는 자본이라는 이름의 경제력이 새로운 불평등의 씨앗이 되었다. 오죽했으면 경제력을 기준으로 삼은 계급투쟁이 생겨났겠는가.


    신분이든 경제적 계급이든 그것은 몸밖의 불평등이다. 그러므로 쉽지는 않더라도 어쨌든 넘어서는 것이 가능했다. 한시도 잠잘 날 없었던 권력투쟁은 곧잘 신분제를 뒤흔들곤 했으며, 일확천금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꿈이었다.


    그러나 이른바 제3차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다는 요즘의 세상살이를 살펴보면, 이제는 몸안의 불평등이 더 두드러지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개개인의 내재적 능력이 그 자신의 가치와 대우를 결정 짓는 시대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귀족이니 양반이니 하는 것이야 말할 것도 없고, 부잣집 자식이라고 해서 평생 그 부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격변하고 있으며, 그 시류를 적절히 타지 못하면 거대 재벌이라도 쉽사리 무너질 수 있다.


    반면, 빌 게이츠의 신화가 시사하듯이, 종래엔 그리 큰 보상을 받지 못했던 개인적 특징들이 경제적사회적으로 비중을 더해가고 있다. 머리가 좋다, 아이디어가 풍부하다, 운동신경이 뛰어나다, 예쁘다, 섹시하다... 예전 같았으면 계급이나 자본에 치여서 빛을 보지 못하거나 부수적인 기능에 머물렀을 이런 장점들이 이제는 경제 일선으로 나서서 부의 새로운 원천이 되고 있다.

 

    언뜻 생각하면, 개개인이 다른 조건 없이 능력에 따라 대우받는다는 것은 평등한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몸 밖의 불평등에 대해서는 철폐투쟁이라도 벌일 수 있었지만, 몸 안에서부터 비롯되는 불평등은 어떻게 하겠는가. 새로운 시대엔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할 것이라는 예측들이 나오는 것을 보면서, 능력주의의 환상에 회의를 품게 된다.

 

-1999년 스포츠투데이 <헛소리> 컬럼에 썼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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