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블로그가 나도 모르는 사이 단독블로그로 전환되면서 모든 글들이 내이름으로 변해버렸는데... 아마도 정경아님의 글이었던듯. ---
* 3월 중순, 서울 은평구 새절역 부근 산새마을 비탈길, 할머니 두 분의 대화 재구성
“아니, 웬걸 그리 무겁게 들고 댕기우? 총각무 김치를 그렇게 많이 담그면 누가 다 먹는다고?”
“총각김치 좋아하는 큰 아들네 집에 좀 가져다주려고 하는 데, 총각무 두 단을 이젠 들지도 못하겠네요. 어디
댕겨 와유?”
“딸네 집 가서 좀 치워주고 시금치된장국 한 냄비 끓여 놓고 왔슈. 아침마다 일 나가느라고 정신없이 뛰쳐나가버려요. 손주는 사내 아이 둘인데 집에 가보면 온통 난리도 아니여유. 근데 무릎팍이 너무 시려 이것도 못 하겄어.”
“올해 몇 살 잡셨쥬? 들었는데 잊어 먹어버렸네요.”
“나, 죽을 때 지났어유. 팔십 일곱이래요.”
“하이고, 내가 그 나이면 춤을 춰. 나는 아흔 지났슈. 이젠 나이 물어보면 대답하기 싫더라고. 몸뚱아리는 안 아픈 데가 없지. 콩나물 무칠 때 간도 제대로 못 맞춘다니께.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여.”
“큰 아들은 워디 살아유? 멀어요?”
“쩌어그, 걸어서 이삼십 분 걸리는데 있슈. 근데 며느리가 집을 나간 것 같애. 아무래도 눈치가 그래. 근디 아들한테 못 물어 보겠더라고요. 속이 더 상할까봐서.”
“그케. 요즘은 아들한테 그런 것 물어보는 게 아니래요. 세상이 너무 변해서 말이쥬.”
“아무케도 내가 너무 오래 살아서 이런 꼴을 보는 겨. 남새스러워 말도 못해요. 딸들은 좀 낫쥬?”
“딸이라 편한 것도 있쥬. 근디 남보다 못할 때도 많아요. 편하다고 에미한테 너무 함부로 하는 것 같고, 내가 서글플 때가 많아요.”
“그래도 나는 딸 있는 사람이 젤로 부럽드만. 아들들은 어려워요. 갸들도 속에 있는 이야기를 나한테 잘 안 해요. 내가 그냥 갸들 눈치만 보다 말아유. 요새 같으면 사는 재미가 한 개도 없다니께.”
“어서 어서 끝을 냈으면 좋겄는디. 이것이 참말로 뜻대로 안 되니... 아이고, 무거울 틴디 들어 가세유.”
“여기 오르막길이 갈수록 힘들어지네. 넘어지는 게 제일 무서워서 그래. 댁도 조심해서 다니슈. 또 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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