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알리타-배틀 엔젤>을 3D 아이맥스로 보았다. 일본 만화 <총몽>을 원작으로 하는 SF 영화다. 1부 9권, 2부 19권에 외전까지 나온 작품이지만 영화가 다루고 있는 것은 앞부분 일부에 불과하다. 원작과 다른 부분도 적지 않지만, 기억을 잃은 주인공 소녀가 싸움을 계속해나간다는 기둥 줄거리는 만화와 같다.
2.
영화를 보면서 문득 ‘영화에서 여자들이 싸움일선에 나서기 시작한 게 언제부터였더라?’하는 생각이 들었다. <에일리언>에서 시고니 위버가 여전사로 자리매김되어 화제를 모으던 것이 떠올랐지만, 그게 최초라는 확신은 들지 않았다.
액션영화들이 근육질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소위 ‘워리어’ 역할을 여자들에게 맡기면서 여전사라는 말이 생겼고, 이 낱말은 문자 그대로 여자와 전사를 절묘하게 합체해서 이쁘고 섹시하면서도 강한 캐릭터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 점에서는 인간의 외모일 수밖에 없는 실사영화들과 달리, 이상적인 몸매와 얼굴을 구현할 수 있는 CG 합성물이 유리하다. 주인공 알리타는 나이어린 소녀이면서도 성숙한 성적매력이 넘치고, 가느다란 허리와는 대조적으로 자신보다 훨씬 덩치가 큰 남자들을 손쉽게 꺾어버린다.
이젠 “살려줘요! 뽀빠이!”를 외치던 연약한 여자의 시대는 저무는 모양이다. <테이큰>에서 아빠에게 구함을 받던 딸은 <테이큰 2>에서 오히려 아빠를 구하고, 스파이영화에서 눈요깃거리로 활용되던 미녀들은 스스로 요원이 되어 첩보일선에 나선다. 적어도 액션영화에서는 남녀가 동등해지는 전조가 보인다.
3.
영화든 만화든 소설이든, SF가 던지는 궁극적인 화두의 맨 꼭대기에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이 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극단적인 상황 속에 인간을 몰아넣을 수 있는 특권을 가진 SF는 그런 질문에 가장 적합한 장르이기도 하다. 그런 극한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행동하고 선택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총몽>은 두 가지 인간형을 제시함으로써 보는 이를 이 질문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 작품에는 자연인 외에도 두 부류의 인간들이 등장하는데, 각기 다른, 대조적인 방식으로 자연인의 한계를 확대한 존재들이다. 하나는 인간의 뇌를 가졌으나 몸은 강화된 부품으로 교체된 존재들. 이른바 사이보그라고 불리는 유형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몸을 가졌으나 뇌는 컴퓨터 칩으로 대체된 존재들.
두뇌와 컴퓨터가 상호교류하면서 지적 능력을 극대화하는 설정은 이미 익숙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뇌가 아예 없고 컴퓨터 칩만 존재하는 인간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한다. 머리속에 뇌가 없고 칩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 유형의 인간들은 매우 충격을 받는 것으로 그려진다.
작가는 그렇게 두 종류의 인간을 보는 이에게 던져놓고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이냐고 묻는듯하다. 이 질문 앞에서 다시 생각해본다면, 뇌든 팔다리든 부품교체라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는데, 왜 유독 뇌에 대해서만 예민해지는 걸까? 굳이 따지고 들자면 컴퓨터나 뇌나 작동방식은 비슷하다. 구성재료가 살아 있는 세포냐 무생물인 금속이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 전기신호의 온-오프로 정보가 처리된다는 점에선 같다.
사실 이 문제는 이미 지난 세기에 천재 SF작가 필립 K. 딕이 천착했던 주제이기도 하다. 그는 데뷔작 <Beyond Lies the Wub>에서 돼지의 몸을 가졌으되 인간처럼 말하고 생각하는 생물을 인간이 잡아먹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고, 말년에 발표한 <Rautavaara's Case>에서는 뇌를 살리기 위해 몸을 영양분으로 공급해버리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그렇게 극단적인 상황을 실험했던 그는 그러나 ‘인간이란 무엇인가?’하는 문제에 대해 아주 쉽고도 간명한 결론을 일찌감치 내려놓고 있었다. 인간이란 ‘따뜻한 마음’이라고.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가 인간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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